2024.05.12 (일)
김씨가 언성을 높였다.
“우리 아이에게 웬 행패인가?”
“내가 무슨 행패를 부렸다고..... . 모를 일일세.”
주모는 제 팔뚝을 문지르면서 다시 쌀쌀맞게 말하였다.
“묵어가려면 선금 내오. 하룻밤 방화료로 쌀 한 되 금이오.”
“베로는 어찌 받나?”
“석 자만 끊어 주오.”
김씨는 독방을 하나 정해 들었다. 보따리를 풀어 베를 넉넉히 잘라 들고 나가 주모에게 주었다.
“옛소. 넉 자 끊었으니 우리 아이에게는 고깃국으로 주오.”
이윽고 밥상이 들여졌다. 시커먼 잡곡밥에 소내장국이 국대접에 가득 담겨져 있었다. 반찬으로는 무짠지 간장 된장이 다였고, 물 한 그릇도 놓여 있었다.
“어서 많이 먹거라.”
김씨는 국을 반이나 덜어 무수에게 주었다. 무수는 남김없이 다 먹었다. 배를 불린 두 사람은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예요?”
“글쎄다. 어디든 살 곳을 정해야지.”
“어디?”
“그건 아직 모르겠구나. 이 어미도 막막하고 답답하다만 설마 하니 우리 두 모자 발 디디고 살 땅이 없겠니?”
무수는 인수가 준 비단주머니를 김씨 앞에 내어놓았다. 대추씨만한 은자가 들어있었다. 그것을 얻게 된 내막을 들은 김씨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작은도련님이 인정이 제일 많긴 하였지. 그건 무수 네가 잘 지니고 있거라.”
콧물을 훌쩍인 김씨는 방바닥 여기저기에 손바닥을 대어보았다.
“방이 차구나. 불을 좀 때달라고 해야겠다.”
마당에 놓인 평상에서 주모가 웬 사내와 마주 앉아 있었다. 평상 옆에는 큰 섬통을 얹은 지게가 지겟작대기에 받쳐져 있었다. 주모는 김씨에게 웃는 낯을 보였다.
“이녘은 우리 서방님이라오. 먼 길 갔다가 이제 돌아왔나 했더니, 아, 내일 새벽바람으로 또 길을 나서야 한다는구려.”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가 굵은 음성을 내었다.
“살림을 일구려면 부지런히 다녀야지. 이 주막은 뭐 흙을 져다 팔아서 차려준 줄 알아?”
“그렇긴 하지, 암.”
김씨는 돌아서 있다가 둘의 대화가 잠시 끊긴 틈을 타서 방이 차다고 말하였다. 주모가 아직 불을 땔 때가 아니라고 하자 사내가 버럭 호통을 쳤다.
“이것 봐. 찾아든 길손을 홀대하면 되겠어? 얼른 가서 쩔쩔 끓도록 불을 때드려. 그래야 소문을 듣고 많이 묵어가지.”
김씨는 방으로 들어왔다. 무수는 바람벽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김씨는 이불을 펴 무수를 바로 눕힌 뒤에 방문 앞에 바짝 다가앉았다.
술을 한 사발 마신 사내의 말소리가 크게 들렸다. 소금장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소금을 팔아 큰돈을 번 장사치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소금 말통을 이고 팔러 다니는 아낙들의 이야기까지 김씨는 마치 별천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외상으로 떼어다가 팔고 나서 본금을 갚으면 되니까 밑천이 거의 안 드는 장사지. 부지런한 아낙들은 밥술만 뜨다 뿐인가 어디? 소금을 팔아서 집 사고 땅 사고 한 아낙들도 많은데, 임자는 여기 가만히 앉아서 돈벌이를 하니 얼마나 좋은 팔자야? 안 그래?”
김씨의 눈이 크게 뜨였다.
“소금이라...... .”
방바닥에 온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곧 따뜻해졌다. 김씨는 무수 옆에 누웠다. 등이 뜨끈해지는 것이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세상없이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사내는 이른 새벽에 떠나고 없었다. 주모가 평상에 걸터앉아 허망한 눈길로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셨나 보네?”
“그러게 말이오. 서방인지 길손인지 나 원.”
김씨는 조심스럽게 주모에게 물었다.
“지게에 진 것이 소금인 것 같던데, 나도 소금 장사를 좀 해볼까 해서 그러는데...... .”
주모는 단번에 잘라 말하였다.
“어젯밤에 뭔가 들은 모양인데, 댁네는 그 몸으로 어림도 없소. 소금팔이가 얼마나 힘든 일인데, 웬만한 사내들도 아서라 말아라 하는 일이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어찌하면 소금 장사를 할 수 있는지 그 방도나 좀 가르쳐 주게나.”
김씨는 주모의 치마 밑에 슬쩍 손을 밀어 넣었다. 주모는 더듬어 보더니 집어 들었다.
“이게 뭐야? 세상에나? 조선통보 아니오?”
“내게 잘 말해주면 한 닢 더 줌세. 응?”
주모는 돌아앉으며 입맛을 다셨다.
“예서 동쪽으로 백리 못 가서 큰 나루가 나올 것이오. 염창나루라고 하는 곳인데, 진주 남강 열두 나루에 소금이란 소금은 거기서 다 대고 있소. 거기 가면 소금 장사를 할 길이 생길지도 모르니 그리로 가 보오.”
김씨는 환하게 웃으며 동전 한 닢을 더 주었다. 주모가 김씨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지 말고...... .”
김씨를 다시 앉힌 주모가 입에서 단 소리를 내었다.
“이제 보니, 참 곱게 생겼소. 어디 양반댁 후실로 있다가 딸린 자식을 데리고 살림을 나는 거 맞소? 아마 맞을 거요.”
“아, 아닐세. 별 희한한 소리를 다 하는구먼.”
(다음에 이어서 매주 월요일 연재 됩니다.)
(작가 소개)
하용준 작가는 대구 출신으로 현재 경북 상주에 거주하고 있으며 소설가 겸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견 작가이다.
장편소설 ‘유기(留記)’를 비롯하여 다수의 장편. 단편소설, 시, 동화 등을 발표하였다.
장편소설‘고래소녀 울치’는‘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최우수 도서’와 ‘2013년 올해의 청소년 도서’에 동시 선정되었다.
시집 ‘멸(滅)’은 ‘2015년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선정되었으며 제1회 문창문학상을 수상했다.
(참고 자료 : 관련기사)
http://www.sminews.co.kr/front/news/view.do?articleId=ARTICLE_00016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