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2 (일)
제 1장 떠나는 두 사람. 9
주모는 당황한 김씨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소리만 내뱉었다.
“내가 마침 일손이 부족해서 사람을 하나 뒀으면 하는데 어떠오? 우리 자매처럼 여기서 잘 지내면서 입벌이나 하는 것이? 소금 장사보다 백배 천배는 나을 거요.”
“말은 고맙지만 나는 이런 일은 체질에 맞지 않네.”
주막은 뭇 사내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하루 종일 그들을 상대하는 일이라 결코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무수를 그런 곳에서 키우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어릴 때 보고 듣는 것이 중요한데, 주막에서 자라면 그 보고 듣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술주정뱅이나 왈패가 되기 십상이 아닌가 말이다.
주막을 뒤로 한 채 김씨는 무수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주모가 배웅을 하면서 아쉬워하였다.
“쯧, 자고로 계집은 사내의 그늘에 있어야 하는 법인데...... . 여자 몸으로 여러 날 길품 팔다가 봉변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김씨의 걸음은 당산골에서 떠나올 때나 강주골에서 떠나올 때와 달랐다. 고향을 등질 때에는 한탄스러운 걸음이었고, 강주골을 나올 때에는 천근만근 무거운 걸음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머리에 인 보따리가 하나도 무겁지 않게 느껴졌고 노랫가락까지 흘러나왔다.
“뭐가 그리 좋으셔요?”
“좋은 일이 있어서 좋겠느냐. 기분을 좋게 가지면 좋아지는 거지.”
가다 쉬다 하는 동안 진주성을 지났다. 높다란 촉석루며, 그 밑을 흐르는 푸른 남강이며, 강 위를 떠다니는 돛배며 나룻배며, 성내외 수많은 집이며 사람이며...... . 과연 대처는 대처였다. 김씨는 속으로 흐뭇하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소금 없이는 살지 못할 터이지, 암.”
강주골에서 염창나루까지는 또 백리 길. 사나흘은 꼬박 걸어야 되는 길이었다. 다리쉼을 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한테 길을 물었다. 그는 손을 들어 가르쳐 주었다.
“저 산 말굽고개를 넘어가면 염창나루가 굽어보일 게요.”
무수는 김씨의 의도가 의아해졌다.
“소금 장사를 할 작정이셔요?”
“뭘 하든 우선은 우리가 정착할 곳을 찾아야 하지 않겠니? 묵은 고을에 난뎃사람으로 들면 이목이 쏠려 여러 가지로 불편해질 것이다. 그러니 수시로 장사치들이 드나드는 나루터나 장터 같은 곳이 우리가 살기에는 나을 것 같구나.”
“어머니 좋을 대로 하셔요.”
“우리가 어디에서 살더라도 무수 너는 또래 아이들과 싸우지 말고, 특히 위험한 곳에는 다시는 가지 말고, 서당에 보내줄 테니 글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 알겠지?”
“장수가 될 건데?”
“장수도 글을 알아야지. 나라의 명령을 받으면 읽을 줄을 알아야 되고, 또 장계(狀啓:관원이 임금에게 올리는 보고)를 쓰기도 해야지. 궁검만 잘한다고 장수가 되는 게 아니란다.”
방어산 고갯마루를 향하여 올라갔다. 길 가에 봇짐장사치 둘이 앉아 쉬다가 희롱을 해 왔다.
“그년 참 반반하게도 생겼네.”
김씨는 무수의 손을 잡고 서둘러 그들을 지나치려고 하였다. 그들 중 하나가 일어섰다.
“좀 쉬다가 가지 그러나.”
무수는 얼른 허리춤에서 팔매줄을 빼 들었다. 다가오는 사내의 얼굴을 냅다 후렸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주저앉았다. 손바닥 사이로 피가 새어나왔다. 앉아 있던 사내가 일어났다.
“이놈이?”
무수는 길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팔매에 재고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리다가 휙 하고 한쪽 줄을 놓으며 후렸다. 돌멩이는 총통의 철알처럼 날아가서 걸어오던 사내의 얼굴을 때렸다.
“윽!”
그걸로 끝이었다. 두 사내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간신히 통증을 참을 뿐이었다. 무수는 김씨의 손을 잡고 걸음을 나는 듯이 하였다. 두 사람은 헐떡이며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사방이 훤히 보였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남강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늘에는 새들이 날고 있었고, 강 위에는 배들이 점점이 떠 있었다, 강 건너 나루터에도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나루터 좌우로 모래벌판이 눈부시게 빛났다.
강가에는 집들이 많았다. 강가 왼쪽에 고즈넉한 마을이 하나 보였다. 김씨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일단 그곳으로 가서 우거(寓居:남의 집에 잠시 빌붙어 삶)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떠냐? 좋아 보이지 않니?”
“어머니만 좋으시다면 저는 다 좋아요.”
“아까 그 치들이 따라오기 전에 얼른 내려가자꾸나.”
고갯마루를 서둘러 내려갔다. 산 중턱 아래에 큰 집채들이 있었다. 경상우도 제일의 염창, 소금창고였다. 그곳을 지나쳐 내려갔다. 이윽고 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여기는 무슨 고을이라고 하지요?”
“무듬실이오.”
<제 2장에 이어집니다>
(다음에 이어서 매주 월요일 연재 됩니다.)
(작가 소개)
하용준 작가는 대구 출신으로 현재 경북 상주에 거주하고 있으며 소설가 겸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견 작가이다.
장편소설 ‘유기(留記)’를 비롯하여 다수의 장편. 단편소설, 시, 동화 등을 발표하였다.
장편소설‘고래소녀 울치’는‘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최우수 도서’와 ‘2013년 올해의 청소년 도서’에 동시 선정되었다.
시집 ‘멸(滅)’은 ‘2015년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선정되었으며 제1회 문창문학상을 수상했다.
(참고 자료 : 관련기사)
http://www.sminews.co.kr/front/news/view.do?articleId=ARTICLE_00016586